opener6 2022. 7. 28. 19:31

<친구> 이젠 자존심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어?

<나> ......

<친구> 그게 힘든건 나도 알아! 내가 자존심을 내려 놓을때 니가 든든하게 힘이 되어주었어.

<나> (약간의 희색을 띄며) 그래? 

<친구> 그래 자존심을 내려 놓아야 다음 장으로 옮겨지는 거야. 

<나> 그렇긴 하지! 그런데......

 

나의 자존심을 긁는 오래된 <친구의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는 겉보기에도 멀건 허우대로 좀 아는체 하는 편이다. 내가 가게를 오픈했을 때 친구는 나의 의중도 묻지 않은 채 어쩌고 저쩌고 참견을 했다. 꼴이 보기 싫었지만 소심한 나는 참았다. 달갑지 않은 그 친구는 오래도록 나의 곁을 맴돌면서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한참을 방황하던 그 친구는 술집을 하나 차리더니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기세가 등등해진 친구를 나는 멀리하기 시작했다. 예상 외로 친구의 가게는 이름이 나기 시작하더니 돈도 괜찮게 벌기 시작했다. 나의 가게는 한참을 기울어 갔고 나는 더욱 소심해져 갔다. 나는 더욱 기술에 매진 했고, 완성도를 높였고, 남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이 부러울 정도의 외형을 갖췄지만 나의 마음은 빗장이 잠겨버렸다. 그렇게 몇년을 버텼다. 시간이 흘러 더이상 버티기 힘든 현실에서 이젠 자존심이고 뭐고 영혼이라도 팔아야 할 판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친구지만 어쩔 수 없는 관계로 자리를 가졌다.

 

<나> 돈 좀 빌리게...

<친구의 친구> @#$%^^&*&^%$#@!

 

친구는 나에게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과 같은 당치도 않은 소리를 내게 늘어놓았다. 나의 마뜩잖은 표정과 마지 못한 말투에 친구가 말했다. "돈만 필요한거지?" 나는 열이 받은 상태에서 "그렇다"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꺼내서 "그만 됐다"고 돌려보냈다. 친구로부터 잔뜩 자존심을 망가뜨렸고 시간이 흘렀다.

 

위급한 상황이 되면 자존심이고 뭐고 없다 싶다가도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자존심이 있다. 내가 남을 무시했던 에너지 만큼 되돌아 오는 에너지가 있다. 그 것이 마음을 상하게 한다. 내가 상할 자존심이 남아있는 만큼 그 동안 외부에 투사한 마음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걸까? 만일 자존심이라도 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볼 일도 없을 것이다.

 

어제 밤에 뱀이 새를 잡아 먹는 소리였는지, 매가 네발 달린 짐승을 사냥하는 소리였는지 모를 일을 겪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내게 스쳐간 앎을 친구가 더욱 자세히 풀었다.

 

<친구> 동물은 생존을 위해 먹이 활동을 할때와 영역을 위협 받을 때에만 대 놓고 위협적인 반면 사람은 마음으로 상대를 은밀히 죽여!

<나> 동감해. 내가 그래온 것 같아. 아니 그랬어!

<친구> 생각의 에너지가 생기면 그것은 그냥 사라지지 않거든! 그것은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나에게로 돌아오는 에너지야. 그게 분노든, 통제욕이든!

<나> 그렇지.

<친구> 이제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도 되지 않았어?

<나> 그래. 가슴의 에너지가 움직이고 있어. 예전에는 머리가 울렁였는데, 지금은 가슴이 울렁거리며 풀어지려고 하네. 그런데... 그렇지만... 그 친구는 내게 좀 너무하지 않았어?

<친구> 그런데, 그만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지 몰라. 니 고집이 상당한 건 너도 알잖아!

<나> ㅎㅎ 그렇긴 하지.

<친구> 영혼이 알아차려야 할 만큼 높은 강도로 오는 거야!

<나> 이래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안돼는 거구나?

<친구> 그래, 에너지는 몸으로 느껴서 내맡기고 해소해야하는 거야. 동물이 하는 먹이활동을 직접 목격하는 것과 화면으로 구경하는 것에 천지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나> 아쉽지만 재미있게 영화보고 이러쿵 저러쿵도 말아야겠네. 전쟁 영화보고 감동 받는 것도 웃긴 일이다. 실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놓인다면 뭐라 말도 안나올 일을 화면으로 즐기는 건 영혼의 성장에 별 도움이 안되겠다. 

<친구> 그래! 상상은 실제처럼 하는 거야!

<나> 아! 상상은 실제처럼. 그럼 그 친구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 실제고, 그것을 내맡겨야 한단 말이지? 

<친구> 그래! 바로 그거야. 그 친구는 실제 너에게 아주 딱 맞는 에너지를 되비쳐주고 있는 셈이지!

<나> 그렇구나!

<친구> 그럼 이제 무얼해야하는지 알겠지?

<나> (깊은 한 숨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지 (다시 한 숨)

 

친구의 친구는 내게 내맡겨야 할 감정의 정곡을 찔러온다.

이리 저리 회피하며 지키려는 자존심을 이젠 붙들 길이 없다.

자존심이란 숨길 수 없는 것을 만천하에 들켜버렸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자존심은 그것이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알고도 모른 채 잡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