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친구
나의 절친에게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의 친구이므로 친구가 되고 싶지만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는 친구들이 되었다. 친구에게 영혼의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의 삶은 영혼과 무관해 보였으므로 나는 친구들에게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 것은 나 또한 영혼에 대해 무지했음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거운 에너지를 느꼈던 사건들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편도 8km의 거리를 낡은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했다. 비포장 도로에서 자전거는 체인이 자주 벗겨졌고 어느날 아예 고장이 나버렸다. 두부와 개구리라는 별명의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어디선가 줄을 찾아서 친구의 자전거에 매었다. 잠시 편하게 가나 싶었는데, 느슨해진 줄에 앞바퀴가 들어가는 찰나 다시 당겨진 줄에 앞 바퀴는 홱 돌아가고 사정 없이 땅바닥에 패대기 쳐졌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이 웃었던 것 같다. 나를 놀리는 줄 알았고, 끌어 준 두부에게 심하게 화가 났었던 것 같다.
마을 어귀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두부가 나에게 장난을 걸었는데, 나는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급기야 싸움이 되었고 개구리는 싸움을 말리지 않고 붙이고 있었다. 나도 한번 해볼만하다 싶었던지 싸움은 시작되었다. 친구의 발차기를 피해 나의 발차기가 친구의 몸통을 가격했다. 쾌감이 일었다. 그리고는 발차기고 뭐고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얼마간 마구잡이 몸싸움을 벌이다가 친구가 돌을 집어들었다. 깜짝 놀란 나는 도망을 쳤고 친구는 돌을 바닥에 내리쳤다. 개구리는 두부의 편이 되었다. 속이 상했다. 겁이 나서 도망친 것에 풀이 죽었고 사건을 일으킨 고물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겁게 땅거미가 내렸다.
얼마 후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다시 자전거는 생기지 않았고 학교를 걸어다녔다. 두부는 2학년을 다니다가 가출을 했고, 나중에 짜장면 집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네 다섯 살 무렵 목이 부러진 세발 자전거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부목을 대어서 겨우 버티는 자전거는 내가 커감에 따라 땅바닥으로 자꾸 주저앉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새 자전거가 갖고 싶었지만 조를 수 없었던 그 무거운 에너지의 파장들, 감정들이 있었다. 혼자만 꿍하게 안고 있었던 좌절의 에너지... 감정들.
친구의 친구들에게서도 같은 감정들을 느꼈다. 가라앉는 삶을 버겁게 버티고 있다는 망상으로 그들을 보았다. 영혼이 삶을 통해 깨닫게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함을 잊은 채 보이는 것만 믿고 따지려하는 독선적인 나로 그들을 대해왔다.
이제 친구의 친구가 아닌 그냥 친구로 그들을 보아야 함을 안다.
영혼 대 영혼의 만남으로 친구에게 말을 건다.
'친구야, 나는 이번 생에서 여러 다양한 감정들을 내려 놓는 법을 배우고 있어. 너의 영혼은 이번 생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니?'
바닥에 낮게 깔린 어둡고 무거운 땅거미 같은 감정들.
그 에너지들로 쌓여진 감정이 내가 아님을 친구에게 고백한다.
'친구야, 좌절해보지 않았더라면 소망의 소중함을 어떻게 알았겠니? 너희와 함께 있어서 내가 정말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었어 정말 고마워.'
두부와 개구리의 영혼이 환한 빛으로 웃음 짓는 상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