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보름,코봉이 이야기

코봉이를 데려온 사연 2012.06.26

opener6 2013. 4. 12. 23:29

 

 

내가 중학생 쯤 되던 시절 여동생들이 어디서 젖도 안뗀듯 싶은 조막만한 숫놈 고양이를 데려왔다.

 

하도 오랜 일이라 고양이의 생김은 가물가물하지만 검은 바탕에 흰색이었는지 그 반대였는지 검고 흰 얼룩만은 기억한다.

 

고양이는 동생들의 돌봄 속에서 컸고 아궁이에 들어갔다 나와서 재를 뒤집어 쓴채 방을 들락거렸다.

 

다 자란 고양이는 쥐도 잡아먹었고 밥상 머리에서 야옹 거릴때면 한 숟갈 덜어주는 밥도 먹었다.

 

나는 그런 고양이를 싫어했다.

 

밤에 내는 소리를 듣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뭔가를 집어던졌다.

 

고양이를 품에 끼도 도는 동생들을 구박했다.

 

제사상에 올릴 조기였는지 기억은 가물하지만 생선 한마리를 물고 튄 고양이를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는 눈에 띄는 곳에서 반절을 보냈고 나머지 반절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생활했다.

 

어느날 집에 돌아온 고양이는 다리를 절뚝였고 어깨쭉지의 가죽이 너덜거릴 정도로 벗겨져 뻘건 속살이 다 들여다 보였다.

 

아버지는 붕대로 고양이의 상처를 감아주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고양이의 상처는 회복이 되었다.

 

그 이후로 고양이에 대한 애증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았다.

 

 

몇년 후 우리집은 아랫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동생들은 고양이를 데리고 이사를 가고 싶어했겠지만

 

차가 다니는 큰 길이 있는 집으로 고양이를 데려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으로 고양이는 두고 가기로 했다.

 

이미 시골의 고양이는 사람의 돌봄 없이 스스로 삶을 살아낼 수 있었으므로 우리 가족은 고양이와 작별을 했다.

 

 

몇개월의 시간이 흘렀을까?

 

밭일을 하러 다시 찾은 옛 집 뒷밭에서 다시 고양이를 만났다.

 

나는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고 고양이는 우리 가족에게 다가와 이리 저리 부비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고양이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서울에서 만난 길 고양이들은 다시 나의 삶에 훼방을 놓았다.

 

노이로제와 같은 큰 고양이들의 아기 울음소리가 멎고 얼마간 지나면 이번엔 진짜 아기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겨울날 추위를 피하려 반지하 계단으로 내려와 쉴새없이 야옹거리는 새끼 고양이를 내쫒은 적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모진 놈일 줄은 몰랐다.

 

어미를 따라 쫒겨가는 새끼 고양이의 한쪽 눈이 분명 이상한 듯 보였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이 곳 제주도에서 다시 길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우리집의 엄연한 고양이 두마리와는 팔자가 완전히 다른 고양이들이

 

저 밖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울음 소리마저 지친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내 귀에 들리는 저 애처로운 소리를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일주일 전 집사람이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그치지 않고 들린단다.

 

벌써 한 3 일은 된것 같단다.

 

집사람이 멘홀 속에 갖힌 새끼 고양이를 드디어 찾고 말았다.

 

다행인지 공교롭게도 이웃 새댁이 먼저 구출하여 어미 곁으로 보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웃으로부터 새끼는 총 예닐곱마리 쯤이며 생후 3주 쯤 되었다는 정보도 받았다.

 

또 그분이 먹이도 챙겨주신다는 소식에 마음으로 큰 절을 올렸다.

 

휴~ 큰 시름을 덜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밖에 목청껏 울어대는 새끼 고양이 (이하 새끼냥) 를 다시 목격하고 말았다.

 

집 사람이 지목한 창 밖에 조막만한 새끼냥이 한 마리가 비를 쫄딱 맞고 바들거리며 목이 쉬게 야옹거리고 있었다. 

 

일주일전 3일간 갖혀있었던 그녀석이란다.

 

집사람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엉겁결에 맨 손에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인기척에 새끼고양이는 수풀속에 몸을 숨겼고 나는 새끼냥이를 잡았다가 놓쳤다.

 

고양이를 잡는 순간 물릴까 두려웠고 손에 닿은 차고 축축한 그 느낌을 감당할 수 없었다.

 

새끼냥이는 그 순간 줄행랑을 놓았고 나는 따라갔지만 새끼냥이는 검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집에 들어와 한 호흡 돌리는데 밖에서 다시 새끼냥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오븐용 장갑을 끼고 고양이 사료를 챙겼다.

 

새끼냥은 하수구 앞에 있다가 나를 보더니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 앞에 먹이를 두고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새끼냥은 몇 분 후 나와 주의 경계도 없이 먹이를 먹었고 나는 두툼한 오븐 장갑으로 새끼냥의 등을 덥썩 잡았다.

 

우려와는 다르게 새끼냥은 온순히 나에게 잡혀서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물을 틀어 두번 샴푸를 한 뒤 드라이로 잘 말려주었다.

 

고양이에게 집사람이 말한다.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배고팠니?

 

어떻하다가 엄마를 잃어버렸니?

 

이제 다 괜찮다 얘야 우리랑 함께 살자. 

 

그리고 촉촉한 해면으로 온몸을 닦아주자 가르릉 가르릉 하며 눈이 감긴다.

 

그날 낮은 내가 품고 종일 잤고 그 날 밤은 집사람이 품고 밤을 보냈다.

 

이름은 은비라고 지었다.

 

은혜로운 비가 내리는 날 인연이 되었다고 의미를 붙여본다.

 

루와 보름이는 낮선 녀석이 궁금한지 밥먹는 것도 잊은 채 몇분 단위로 녀석이 있는 방을 기웃거렸고

 

우려했던 큰 녀석들의 경계는 볼 수 없었다.

 

믿고 몇시간 외출하고 다녀온 사이에도 집 안은 평온했다.

 

루와 보름이 녀석들이 대견스럽게 벌써 다 컸구나.

 

 

 

다음날부터 기운을 차린 꼬맹이 녀석의 하악거리는 경계가 볼 만 하다.

 

하지만 그 경계 속에는 그간 내가 길거리를 배회하는 녀석들에게 품고 있었고 마주하기 싫어했던

 

모든 마음들에 대한 불신이 담겨있는 듯하여 마음이 더욱 짠하다. 

 

내가 왜 그걸 미처 몰랐을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했다.

 

오늘 3일째 녀석의 경계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동안 녀석은 먹을 것을 옴팡지게 먹고 볼 일을 한껏 보았다.

 

쿵쿠리한 냄새가 한껏 풍기는 방안 녀석은 테이블 밑에 아직은 반쯤 몸을 내밀었지만 우리는 함께 있다.

 

 

 

 

 

 

 

3일 전 때빼고 광 낸 사진

 

 

 

 

     

방금 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