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식에 대한 궁금함 2011.09.25
자신의 의식을 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자 알고 나면 차마 드러내지 못할 실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식을 잰다는 것은 측정할 준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기도 합니다.
의식을 재는 일은 지고의 선에 봉헌하는 마음 자세를 갖춰야 하는데 이 순간은
에고가 법정에서 형량을 선도 받는 느낌과도 같았던 것 같습니다.
부풀려진 자아는 입구가 풀린 풍선처럼 공기를 빼면서 쭈그러들고 낙담하는데,
얼마전 호박사님께서 낙담도 의식 진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의식을 재는 순간에는 요동하지 않는 경건함이 있는데요,
이 순간에 자신의 의식이 백발백중으로 명중되어 나옵니다.
마치 작살에 꽂힌 물고기처럼 파르르 떨리기도 합니다.
에고는 이 명중의 순간에 숨이 꺼져가는 자부심을 놓고 매우 속상해합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에고는 겨우 살아나서 두번 죽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 칩니다.
어쩌면 의식정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뀌어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부정적이지 않기를 애써 감추며 의도적으로 기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측정 자체도 잊은 채 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 측정치는 비유하자면 집 짓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레벨기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 수리를 하다보면 70-80 년대 이전 집들은 많은 애로가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누수와 하수 문제이고 둘째는 수직 수평이 맞지 않는데,
수직 수평이 맞지 않는 집은 레벨기란 기계가 있어야 모든 밸런스를 맞추어 가며 반듯한 모양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이야 좋은 기계 없이 실에 추를 달아서, 물 수평을 띄어서, 그리고 눈대중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효율 면에서 지금의 작업속도 보다 많이 더디고 굴곡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 레벨기란 기계는 수직 수평의 빨란 레이져 선을 그어주는 기계인데요, 오차가 10미터에 + - 1mm 입니다.
의식측정을 해보면 측정의 오차는 거의 얄짤 없이 정확하게 나오는데, (에고의 기대치가 수런거리지 않을 때)
최신식 기계와 비교해봐도 정밀도가 작살입니다.^^
비로소 자신의 의식을 알아야 겸손이란 말의 의미도 어슴푸리 깨달아가는데요,
이유는 갈길은 멀고 걸어 온 길도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라서 앞날의 아찔함들을 떠올리면 우쭐 댈만한 건덕지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누구에게 잣대를 들이 댈 형편도 안되고, 더 높은 의식에서 보는 자신의 초라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익지도 않은 벼가 너무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는데 자아는 스스로 그렇습니다.
이때부터 마하리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자아를 알았으면 탐구하라는 말씀의 뜻을 따라서
행위자 없는 행위와 내맡김에 적용되는 미뤄두었던 일상의 빨랫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데요,
수면으로 떠오르는 정화되어야 할 무의식의 카르마들은 100만 대군과 같아서 항복하지 않고 배겨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밀려드는 삶의 고단함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