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지표 찾기 2011.10.01
의식혁명의 혁명이라는 말은 출판사에서 시선을 끌고자 지은 목적이 다분하다 여겨져서 귀에 거슬리고요,
의식수준의 수준이라는 말은 누구는 높고 누구는 낮은가의 자부과 열등을 야기하는듯 여겨져서 꺼려지고요,
의식측정의 측정은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무의식을 올려놓을 만큼 저울 용량이 되지 않는 관계로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의식지표 찾기 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데요, 왜냐하면
어떤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다보면 결정을 내려야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지요.
고민이 고민을 낳는 가운데 나름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만
시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면 그땐 미처 들춰보지도 못한 더 나은 선택지들이 우르르 쏟아지곤 하지요.
사람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은 감정이 배재 될 수록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가지만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감정의 내용을 얼마만큼 통찰하느냐에 따라서 감정의 질도 세련되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풍부한 경험 속에서 노련한 혜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삶인지 모르고 쓰고 살 뿐이겠지요.
자신의 삶이 칠흑같은 밤과도 같은 향로에 놓여 있을 때,
정말 이 지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노력으로도 살아볼만한 삶이라면 굳이 의식의 지표가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목표의식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의지로도 충분히 삶의 질을 높이고 세상에 기여도 하고 살 수 있을겁니다.
언제나 그렇듯,
'내 생각이 옳아!' 내지는 '아마도 내 생각이 옳을거야!' 혹은 '저 사람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해!' 또는
'내 생각은 이래!'... 등등... 자신을 피력하고 살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내 삶이 심장이 끊어질듯 조여오고,
허망하기 이를데 없어 사지에 맥이 다 빠져버리고,
절망의 절망의 절망의 늪에 빠진 상황이 오고, (자아는 자신의 절망만한 절망이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살아내야할 삶은 까마득한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스스로 가망이 없을 때,
어디선가 홀연한 귀인이 나타나 나를 도와주는 일은 절대 없을겁니다. (있을 수도 있구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때,
'신께서 계시다면 저의 길을 일러주세요.'
라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이
의식의 지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에 의식의 지표를 써서 어떤 바램을 청했더니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의 삶을 살았었습니다.
세 아이와 함께 생활 했던 것도 그랬구요,
두 가정이 제주도로 이사를 해서 정착한 것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질지 모르는 삶의 행로를 걷고 있습니다.
늘 의식의 지표를 묻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어떻게 결정을 내렸으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
언제든 의식의 지표님께 간청을 할겁니다.
'지고의 선이시여 저의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