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팅고 이야기

까마귀 날아간 곳에 2012.02.17

opener6 2013. 4. 13. 12:55

 

 

 

 

 

 

 

 

 

 

 

 

눈이 수북 쌓인 산길을 숨차게 오르다 보면  

어느새 내 모습은 고해성사를 하는 모습이 되어버린다.

 

 

에피소드 1.

 

어느날 친구와 함께 노꼬메에서 건너다 보이는 노로오름을 향했다.

바리메와 노꼬메 사이의 네비에도 없는 소방도로를 한참을 올라가서 오름 표지판이 보였다.

10분쯤 걷다보니 이정표 없는 양갈래 길이 나온다.

두군데 다 눈위에 새겨진 발자국 수가 비슷하다.

조금 더 가면 합류하는 길일 것 같았다.

재미 삼아서  

나는 오른쪽 길을 갔고 친구는 왼쪽 길로 갔다.

그런데 길이 멀어지고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각도가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10분을 걷다가 반대편으로 인기척을 보냈다.

"어이~!"

대답이 없다.

밧대리 한칸 남은 전화를 켜서 번호를 눌렀다.

예상대로 신호가 가다가 끊긴다.

길이 어긋난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다시 돌아가기엔 먼 길을 왔다.

평정심을 찾는 기도를 하며 친구한테 텔레파시를 보낸다.

안심이 되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길은 정상에서 만나겠군!'

갈림길에서 오름 정상에 오르기까지 40분이 걸렸다.

정상에서 친구가 올라올 만한 길은 어수선했다.

그 길을 더듬어 조금 내려가자 친구가 보였다.

정상에서 만날 줄 알았다며 친구는 차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에피소드 2.

 

사람이 많은 주말에는 한라산 등반을 피해서 오름을 다닌다.

이번엔 한대오름이란 곳을 찾았다.

평소에 영실부근을 지나면서 차들이 길가에 서있고 몇몇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보곤 했던 곳이 입구였다.

수북한 눈길을 40분을 걸어 들어가자 버섯 농장의 세갈래 길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가 가려고 했던 한대오름 방향엔 발자국이 없었다.

조금 걸어들어가다가 다시 나와서 농장 할아버지께 길을 여쭸다.

우리가 걸어간 길이 맞음을 확인하고 새하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30분을 걸었더니 외딴 길에 대문을 만났다.

안에서는 개가 짖었고 철대문은 닫혀있었다.

"저기요~" 부르는 내 목소리는 기대감이 없었고, 역시나 인기척이 없었다.

'설마 할아버지께서 틀리게 가르쳐주셨을까...?'

그렇진 않을 것 같았다.

발걸음을 돌리자 바로 차가 들어가는 길과 함께 등반객들이 남기는 빨간 표식이 보였다.

'저 길이 틀림없을꺼야!'

온 길을 되돌아 가는 것보다 저 길로 가는 게 더 맘에 들었다.

직감의 방향타도 그 곳으로 향하는 듯하다.

왠걸...

30분 후 길이 끊겼다.

눈은 가끔씩 무릎까지 빠졌고

'이 길이 아닌가봐!' 는 점점 더 분명해졌다.

하지만 친구와 나는 편하려고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가면 뭐라도(어떤 길이라도) 나올 것 같은 그 곳으로 계속 걸었다.

한시간 쯔음 지나 까마귀떼가 까~~악 거렸고 친구는 까마귀에게 길을 물었다.

까마귀들은 서쪽으로 날아갔다.

나는 친구와 까마귀를 무시하고 동남쪽으로 걸어갔다.

30분쯤 걸었더니 역시나 길이 나왔다.

그 길로하여 다시 한참을 걸었더니 나온 곳은 철대문이 있던 바로 그곳의 다른방향 철대문이었다.

'아차!'

이 철대문은 밖에서 열 수 있는 잠금장치가 있는 것이었다.

또한 그곳은 우리가 길을 잃었던 곳에서 서쪽이었다.

그 길로 30분을 더 들어가서 한대오름을 찾을 수 있었다.

 

돌아나오는 길에 우리가 잘못 들었던 길에는 여러개의 발자국이 나 있었고

우리가 잘못 짚었던 그 길을 따라 누군가 한참 헤매었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툭하고 터졌다.

 

닫혔다고 생각했던 문은 열려있었고, 까마귀는 우리의 물음에 대답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