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팅고 이야기
고사리 삼매
opener6
2018. 5. 5. 11:35
이맘때면 산과 들의 초목에서 새순이 나오고
그 중 십중 팔구는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저마다 약성들이 있어서 겨우내 움추려 있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아주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그 중에 4월 중순에서 5월 초순까지가 절정인 나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사리인데요,
고사리는 봄 나물의 제왕이라고 할 만큼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고
가격 또한 상당히 고가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사리를 찾아 온 산천을 누빕니다.
하루동안 고사리를 꺾으면 일당의 두 세배 정도로 수익이 좋으니
고사리 꺾는 재미까지 더한다면
제주도 중산간 도로에 고사리꾼들의 차가 즐비하게 서있는 것도 그때문이랍니다.
저도 어릴 때 고사리를 꺾어서 새신발을 사 신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습니다.^^
올해도 역시 고사리 철이 왔고, 쇼핑백 하나 정도 할 요량으로
우리들만의 장소로 드라이브를 나섰습니다.
작년에 그 곳에서 꿩알을 십여개 보았고 며칠후 모두 알을 깨고 나갔던 곳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굵고 늘신한 종류의 것을 채취했고
중전님은 제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종류의 잔 고사리류를 열심히 뜯으셨죠.
저는 늘 굵고 늘신한 것들을 한 웅큼 해서는 자랑하듯 보여주었습니다.
속으로는 잔챙이들에게 고만 신경쓰고 나처럼 이렇게 굵직굵직한
고사리들을 꺾는게 어떠냐는 무언의 자부심을 던졌습니다.
중전님은 아랑곳 없이 자신의 고사리를 고집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제가 우리 중전님처럼 고사리를 뜯고 있었습니다.
'꺾는다.'가 아니라 '뜯는다.' 는 표현이 딱 맞게 그렇게 뜯는 고사리가
맛있는 고사리라는 알아차림이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사리에 대한 관점이 쭉쭉빵빵한 시각적인 관점이었다면
바뀐 관점은 고사리를 나물로 보고 식감과 맛을 연결지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놈의 자부심은 고사리 조차도 가만두지 않았구나!'
자부심을 내려놓고 고사리를 바로보기 시작했더니 작년까지와는 다르게
온 천지가 고사리밭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말도 잊은 채 한참을 고사리 삼매에 빠졌습니다.
평소 수확량의 몇배가 되었고 마대로 한자루를 담게되었습니다.
평소에 고사리꾼들을 부러워 하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많은 고사리를 많이 뜯을 수 있을까? 눈여겨 보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알게되었습니다.
고사리꾼들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고 고사리에 집중한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고사리에 집중했고, 두사람이 집중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고사리 수확량이 늘은 것은 둘째고, 자연 속에서 흠뻑 몰입하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무언가를 몰입해서 함께한 적은 까마득한 지난 일이었습니다.
이제 비로서 무엇이라도 함께 할 수 있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가 참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았구나!
나와 같은 것을 바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늘 바래고 흥정하며 지내온 시간이었습니다.
돈을 벌려고, 성공하려고 애쓰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목표를 물질에 두고 '조금만 참자! 조금만 더 참자!' 하며 버텼던 시간 동안
온갖 몸과 마음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안개 자욱한 오름의 정취와 고사리 삼매에서
고사리 한자루 만큼 늘 지고 다녔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며
중전님과 치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