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표절이 대중의 이슈다. 우리는 삶에서 뭔가를 따라하면서 배워나가기 시작한다. 음식은 레시피를 따라하면서 점점 숙달이 되어지고, 집을 지을 때에는 수 많은 책을 보면서 설계하는 법을 익힌다. 옷은 탁월한 디자이너들의 것을 조금씩 손봐서 시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배끼는 것이 아닌 것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시에서 무시무시한 선생님이 담임으로 오셨다. 그 선생님은 운동회에서 차전놀이에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히고자 했다. 아이들에게는 한복이 없었다. 준비하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일어선 여럿의 아이들이 신발로 따귀를 맞고 쓰러졌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친구들은 그 광경을 보고 질겁을 해서 두더지처럼 잽싸게 자리에 앉으며 상황을 모면했다.
어느날 선생님은 옛날 책 한권을 건네시며 책 속의 삽화 한장을 배끼라고 하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림을 뚝딱 배꼈다. 또래의 아이가 머리에 끈을 묶고 빗자루로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다. 빗자루로 뭔가를 쓸어내는 문구가 들어있는 삽화였는데, 글자만 선생님이 써주신대로 바꿨다.
한참 후 나에게 상장이 하나 생겼다. 그 때 배낀 그림이 어느 대회에 나가서 상이 되어서 돌아왔다. 상이 좋긴 하지만 상품도 없었고 찝찝한 기분을 남겼다. 얼마 후 선생님과의 악연이 더욱 깊어진 사건이 벌어졌다. 선생님께서 운동회에 쓰려고 모아놓은 쌕쌕 오랜지 캔을 장난을 치다가 망가뜨렸다. 노발 대발한 선생님은 이전에 피해갔던 폭력보다 심하게 뺨을 왕복으로 열대는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망가뜨린 쌕쌕 오랜지 캔을 다섯개를 찾아서 오라는 엄명을 받았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서 선생님을 미친 듯이 저주를 했다. 학년을 마치면서 그렇게 바랬건만 6학년에도 선생님은 담임이 되셨다. 어느 학생의 학부형께서 교무실이 떠나가라 고함을 치며 사과를 받아가신 후부터 선생님의 폭력은 약간 잦아들긴 하였다.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 선생님의 아이 중 하나가 많이 아팠었고, 죽었다고 한다.
그림 배끼는 것을 잘함으로 해서 얻었던 자부심은 상장을 통해서 돌아왔지만 내가 그 때 느꼈던 찝찝했던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폭력을 겁내면서 마음 속으로 일으키는 증오는 상대도 다치게 했고 나도 다쳤다. 그때 상장을 찢어서 버린 것 같다.
호박사님께서 200 미만은 경험을 경험한다고 한다. 과도하게 부풀려진 자부심이 꺼지면 수치심이 드러난다. 삶을 살아가면서 표절은 늘 상 있는 것이지만 출처를 밝혀야하고, 자신이 만든 것에 저작권의 자부심을 심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말씀을 옮겨 남을 가르치려는 행위를 하는 것은 크게 잘못 되었다. 표절의 사건과 의식이 떨어진 것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죄의식이나 수치심등 무거운 감정들은 꺼리기 때문에 피해야 할 것들이 아니라 내맡김으로써 가벼워지기에 감사한 것들이다. 수치심은 성적인 부끄러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정직이 결여되었을 때 느껴야 할 감정이다. 어린 영혼은 수치심을 알아차림으로써 보다 성숙한 영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