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은 1515년에 스페인의 아빌라 지역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인구 몇 만의 이 작은 도시는 교회가 열댓개에 수도원이 열댓개가 있는 신앙의 도시였습니다.
고려 말기에 불교가 쇠락했던 것처럼 16세기의 카톨릭 교회도 위기를 맞고 있었는데요, 이는 유럽 전역의 나라들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면서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갈취를 해서 부의 축적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영예운 것으로 여겼으며 양심의 가책을 운운할 수 있는 풍조의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와 교회는 십자군의 명목으로 하느님을 위한 싸움으로 사람들이 전쟁에 나서길 부추겼으며, 싸우다 죽으면 천국을 간다고 선전을 했습니다. 순진무구한 젊은 사내들은 전쟁에서 살아내면 부와 명성이요, 죽어도 명예와 천국이 보장되는 면죄부를 받았으므로 시덥잖은 일거리를 두고 이래저래 손해볼 것이 없는 전쟁에 열광하며 뛰어드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무렵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첫 개혁의도와는 다르게 무질서한 개신교들도 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카톨릭 교회도 세상과의 타협의 도가 지나쳐서 수행의 법도가 흐려지는 시기였습니다.
이 책을 쓴 작가 마르셜 오클레르의 이야기 또한 얼마나 드라마틱한지요. 2차 세계대전 중에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함께 피난 생활을 하며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며 이 전기를 봉헌 했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녀님이 창립한 수도원을 돌면서 벌어진 일화들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지요.
저는 수녀원하면 세상과 동떨어지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성질 고약한 고참 수녀님들이 어리버리한 신참 수녀님들을 무섭게 훈육하는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화에 단골 소재로 나오는 장면들의 피해자로서 말이지요. 그중에 '아뉴스 데이' 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속적인 단물의 이야기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무지에 의해서 스스로가 속여졌던 것이었습니다. 글쓴이의 안내를 따르며 상상으로 탐방한 봉쇄 수녀원의 창살 안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한 천국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상태의 기도가 어떻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지는 책에 상세히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은 날때부터 하느님께서 딱 점찍어놓은 딸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으로 연애도 해보시고, 남자임을 잊지 못한 신부님을 상사병도 나게하시고 질투도 심하셨고 수행에 욕심 내다가 낭패도 보시고, 온갖 우여 곡절을 겪은 후 마흔 살 정도 되어서 드디어 하느님을 체험하시게 됩니다.
한가지 유명한 일화의 그림으로는 십자가의 성 요한님과 함께 공중에 뜬 장면을 본 수녀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책을 읽으면서 주의할 점은 수녀님께 빨려들어 넋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 작가의 글 솜씨 또한 훌륭해서 읽으면서 계속 탄복을 하게 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의 의식측정은 715,
십자가의 성요한님은 600대로 기억합니다. 나이가 27살이나 적은 성요한님이 수녀님을 꾸짖는 모습도 너무 즐겁습니다. 성요한님이 먼저 돌아가시는데요, 이 대목에서는 수녀님과 함께 눈물의 강을 만들어버립니다.
호박사님께서
'신이 계시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말씀 하시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신 것이 저로서는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신의 성소를 자신안에 들이지 않는 내맡김은 교양서적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 였습니다. 저는 이십년간 훌륭한 교양서적을 읽었던 것이었습니다. 기억력이 나빠서 잘 외우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데레사수녀님의 전기를 통해 '밀알의 죽음'에 대한 에고의 저항을 내맡겨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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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에 불교가 쇠락했던 것처럼 16세기의 카톨릭 교회도 위기를 맞고 있었는데요, 이는 유럽 전역의 나라들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면서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갈취를 해서 부의 축적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영예운 것으로 여겼으며 양심의 가책을 운운할 수 있는 풍조의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와 교회는 십자군의 명목으로 하느님을 위한 싸움으로 사람들이 전쟁에 나서길 부추겼으며, 싸우다 죽으면 천국을 간다고 선전을 했습니다. 순진무구한 젊은 사내들은 전쟁에서 살아내면 부와 명성이요, 죽어도 명예와 천국이 보장되는 면죄부를 받았으므로 시덥잖은 일거리를 두고 이래저래 손해볼 것이 없는 전쟁에 열광하며 뛰어드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무렵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첫 개혁의도와는 다르게 무질서한 개신교들도 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카톨릭 교회도 세상과의 타협의 도가 지나쳐서 수행의 법도가 흐려지는 시기였습니다.
이 책을 쓴 작가 마르셜 오클레르의 이야기 또한 얼마나 드라마틱한지요. 2차 세계대전 중에 남편을 잃고, 아이들과 함께 피난 생활을 하며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며 이 전기를 봉헌 했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녀님이 창립한 수도원을 돌면서 벌어진 일화들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지요.
저는 수녀원하면 세상과 동떨어지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성질 고약한 고참 수녀님들이 어리버리한 신참 수녀님들을 무섭게 훈육하는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화에 단골 소재로 나오는 장면들의 피해자로서 말이지요. 그중에 '아뉴스 데이' 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속적인 단물의 이야기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무지에 의해서 스스로가 속여졌던 것이었습니다. 글쓴이의 안내를 따르며 상상으로 탐방한 봉쇄 수녀원의 창살 안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한 천국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상태의 기도가 어떻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지는 책에 상세히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은 날때부터 하느님께서 딱 점찍어놓은 딸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으로 연애도 해보시고, 남자임을 잊지 못한 신부님을 상사병도 나게하시고 질투도 심하셨고 수행에 욕심 내다가 낭패도 보시고, 온갖 우여 곡절을 겪은 후 마흔 살 정도 되어서 드디어 하느님을 체험하시게 됩니다.
한가지 유명한 일화의 그림으로는 십자가의 성 요한님과 함께 공중에 뜬 장면을 본 수녀의 그림이 있습니다.
이책을 읽으면서 주의할 점은 수녀님께 빨려들어 넋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생동감 있게 그려내는 작가의 글 솜씨 또한 훌륭해서 읽으면서 계속 탄복을 하게 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의 의식측정은 715,
십자가의 성요한님은 600대로 기억합니다. 나이가 27살이나 적은 성요한님이 수녀님을 꾸짖는 모습도 너무 즐겁습니다. 성요한님이 먼저 돌아가시는데요, 이 대목에서는 수녀님과 함께 눈물의 강을 만들어버립니다.
호박사님께서
'신이 계시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말씀 하시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신 것이 저로서는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신의 성소를 자신안에 들이지 않는 내맡김은 교양서적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 였습니다. 저는 이십년간 훌륭한 교양서적을 읽었던 것이었습니다. 기억력이 나빠서 잘 외우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데레사수녀님의 전기를 통해 '밀알의 죽음'에 대한 에고의 저항을 내맡겨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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