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아무리 의미를 되새기려고 힘써도 암기되지 않는 유리알 유희라는 책 제목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를 짓는다거나 작곡을 한다거나 설계를 하는 등 행위에 깊게 몰입하는 상태, 그에 따라 얻게되는 기쁨 정도로 자의적 해석을 해봅니다.
요즘 들어서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들을 거둬들이며 내면의 작용을 들여다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요, 이러한 저의 심리 상태와 절묘하게 맞아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헤르만 헤세라는 인물이 어떤 시대적 배경을 살았고, 어떠한 출생 신분이며 어떤 정신에 이끌렸으며 성격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죽음을 피부로 절감하며 살아갔을 조상님 세대와는 다르게 풍족한 자원 속에서 자란 철부지가 되어 심도 깊은 예술가의 예술혼과 책무를 진 책임자의 임무의 중엄함에 숨을 참아가며 읽어 내렸습니다.
요즘 음악에 약간 눈을 뜨고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곡을 들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가만히 자신을 살펴보았더니 귀를 막고 살아온 저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귀를 닫게 된 경위들도 찬찬히 살피고, 놓아주고, 열어놓는 방법들을 간구하고 있었는데, 책이 음악에 대한 감각의 지평을 열어주고 이어주는 역할이 되었습니다. 샛길로 약간 나가보면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노래를 잘부른다는 착각을 들게 한 선생님이 계셨지요. 음악실은 커피향이 있었고, 로코코풍의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교회 의자처럼 생긴 벤치에 네명씩 조를 이뤄서 앉았는데 우연찮게 짝을 이룬 우리조를 불러 세우셔서 매번 노래를 시키셨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알고보니 기영이와 덕유와 철상이가 노래를 잘했던 거였습니다. 저는 간신히 음치를 면할 정도라는 것을 노래방이라는 곳에 가서야 깨달았지요. 아무튼 요즘에 음악이라는 것이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 첼로 선율에 푹 빠져있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주인공과 그를 이끌어준 스승들 동료들, 이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심리 상태와 정밀 묘사에 대해서 깊이 빠져들었다가도 숨이 막혀 허둥지둥 물위로 떠오르는 반응을 보이다가 어딘가에 쫓기듯 막 내달렸다가 걸려서 넘어져서 아픔이 지나갈 때까지 꼼짝못하고 붙들려 있는 것처럼 온갖 감정의 채색을 덧칠해 가면서 읽기도 하였습니다.
주인공도 되었다가 친구의 입장도 되었다가 스승의 자애로운 눈길로 주인공을 애송이 취급도 하였다가 반전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무릎을 쳤다가 소설에 너무 깊이 빠져든 자신을 보면서 애늙은이처럼 책을 분석도 하였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마력에 빠져들듯, 스승의 노년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호박사님을 은근히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습니다.
주인공이 공직을 떠나 주관적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무렵에서 또한 호박사님께서 병원에서 물러나서 서부 사막으로 향하신 그맘때를 추측하고 연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때론 장황하다 싶은 묘사들은 실제는 더욱 깊숙하여 저의 쉬이 바깥으로 이끌려나가는 기질을 진득하게 눌러앉치고 놓아버리고 인내심을 기르는데 작용을 하였습니다.
이야기의 끝단에서 주인공이 젊은 청춘을 따라서 차가운 호수에 몸을 던지고 사라진 장면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이 불친절하게 이야기를 맺었는데,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두차례나 전쟁을 겪은 그 때의 헤르만 헤세에게 닥쳐온 운명에 대한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펄펄 끓는 피를 따라 엉겁결에 얼음장처럼 찬 물에 거역할 틈없이 뛰어들고 마는... 극 중 주인공의 말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소원인 대로 되고 말았네요.
살을 애는 고통 속으로.
유리알 유희가 시작된 그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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