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팅고 이야기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opener6 2022. 11. 9. 11:52

 

수렴의 계절로 접어들며 책과 음악의 시선을 빌어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저항감을 내려 놓으니 책들이 읽어지기 시작하고 음악도 들어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투사했던 감정들도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책은 어느 뇌과학자가 실제로 뇌출혈이 일어나서 쓰러지고 회복한 생생한 체험담을 담은 책입니다. 

 

질 볼트 테일러라는 명랑한 성격의 뇌과학자는 오빠가 뇌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뇌과학자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37세의 어느날 아침 좌뇌에 뇌출혈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좌뇌 기능이 떨어지면서 세상과의 분리감이 줄어들고 일체가 되는 체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호박사님의 저서 '나의 눈'에 나오는 깊은 체험을 일반인(뇌전문가이긴 하지만)이 뇌출혈로 겪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진지한 가운데 무척 신선한 일이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였습니다. 

 

책은 요즘 주목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인 신경가소성을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의 좌뇌 신경부들이 손상을 받으면서 좌뇌를 출처로 해서 삶을 영위하는 부분들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배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어린아이와의 차이점이었습니다. 

 

걷는 법을 익히고, 글씨를 배우고, 글자에 의미를 다시 불어넣고...... 의식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청난 끈기력으로 회복을 해나갑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을 두번 하는 꼴이었습니다. 다만 두번째는 알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습니다. 

 

신경가소성은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가령 교통사고가 나서 외상과 정신적 충격이 가해진 상태에서 통증과 정신적 고통이 한데 엮어져 후유증이 생깁니다. 이 후유증은 평생을 달고 살 수 있습니다. 닥터하우스의 닥터처럼요. 다리에 통증이 도질 때에는 무척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 되며 통증과 동반해서 풀지 못하고 축척해 놓은 정신적 고통까지도 불러오는 결과를 일으킵니다. 또 다른 예로 밀턴 에릭슨이라는 정신전문의는 어릴때 소아마비로 4살 무렵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병상에서 누워지냈으며, 대학 진학 무렵에는 열병을 심하게 앓아서 며칠 못살고 죽을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회복을 하였지만 평생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지요. 어떤 날 한쪽 다리를 잃고 절망의 시기를 겪는 학생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짜고 엘리베이터를 잠깐 고장을 일으켰지요. 그러고는 밀턴 박사님은 다리를 잃은 학생에게 말합니다. "엘리베이터 따위는 성한 녀석들이나 타고 가라지, 우리 절름발이들은 계단을 이용하세나!" 둘이서 절뚝거리며 계단을 오르며 학생은 밀턴 박사님께 남다른 에너지를 느끼고 밝고 명랑한 생활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신경가소성은 통증과 고통의 상관 관계를 꿰뚫고 놓아버리고 새로운 신경망이 조직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뇌과학에서는 뇌신경이 손상되면 복구가 어렵다고 말들을 해왔는데요, 이것은 환자 전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증과 고통이 감당이 안되어서 지레 포기한다거나, 통증에 과도한 고통을 부과해서 일부러 신경을 퇴화시키는 일(낫지 않기로 결심) 하지 않는 이상 혹은, 신경가소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 등으로 모든 환자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불치병에 걸린 것에 대한 치유의 환상을 심어주는 일에 대한 경계이기도 할 것입니다. 

 

호박사님께서도 다가 올 그것에 대해서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이 부러질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 될지는 모른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어쩌면 깨어남을 고통을 회피하려고 놓아버림을 붙드는 결과로 살아왔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통증과 고통에 직면해서 둘이 하나가 아님을 분리해내고 놓아버림으로 해서 하나의 감정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그마한 예로 저의 오른쪽 다리도 자전거 사고로 인해서 인대의 파혈과 고통스럽다고 여겼던 기억들이 후유증을 만들었습니다. 기억은 흐려지고 발목의 뻣뻣함은 선천적인 것으로 퇴화되었고 통증은 평생 함께해야할 것으로 신념화되어서 오른쪽 다리는 불쌍한 다리가 되었습니다. 이 불쌍한 다리는 통증이 도질때마다 불행스런 고통의 기억을 꺼내서 합리화시키고 자신의 한계를 긋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고통의 요직을 맡은 다리는 힘쓸때마다 통증을 일으켰고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다보니 차라리 보호를 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호하면 할수록 힘을 잃었고 근육은 줄었고 약간은 절기까지 하였습니다. 불쌍한 다리는 절을 할때면 균형을 잃었고 모든 핑계의 근원으로 입지를 굳히면서 자신을 더욱 가련하게 만들어 꿀물을 취했습니다. 

 

이제야 이것을 풀때가 되어 자물쇠 구멍이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고 통증을 마주했고 고통스런 기억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사실 고통스런 기억들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억제하여 꾹꾹 눌러놓은 것들은 야밤에 튀어나올지도 모를 원망 가득한 귀신이거나, 복수심으로 나를 잡아죽이러 온 자객들이거나, 아무 이유없이 무단으로 덮쳐올 것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그리고 공포를 놓아버리는 것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얼마전에 역사학을 하시는 분이 미이라의 뼈를 수습하는 장면은 보았는데요, 삶에서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며 뼈를 매만지고 이어 맞추는 모습에서 환하게 빛나는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들에 휘둘리지 않고 직면하면 날뛰고 들끓는 마음들이 자리를 찾고, 치유되어가는 과정들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신경가소성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체험 사례들을 보면서 눈이 뜨인 느낌이었습니다. 앉은뱅이가 걷는 기적과 장님이 눈뜬 기적과 죽은자가 살아나는 기적은 마술쇼가 아니라 신경가소성을 이해하게되면 당연히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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