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팅고 이야기

새술은 새부대에

opener6 2022. 11. 16. 13:51

고등학교 때 기타를 멋지게 쳐서 인기를 받고 싶은 욕망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막걸리를 먹으며 부르던 노래들은 트로트 메들리였습니다. 

욕망이 뿌리내릴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고물 기타가 생겼는데 다음 순서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욕망은 금새 말라 죽었습니다.

배울 선생님도 없었을 뿐더러 제대로된 조율법도 모른채 줄을 당기다가 끊어지면 바로 절망이 왔습니다.

기타 줄 뿐만 아니라 전반적 삶에 스페어란게 없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20대 초반 어느날 기타에 절망했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당장 낙원상가에 달려가서 기타를 샀습니다. 

튜닝 기능이 내장된 고급스러운 기타로 질렀고, 끊어먹지 않으려고 기타줄도 비싼걸로 두벌을 구입했습니다. 

학원도 끊었습니다. 

처음엔 열심히 연습하다가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가고 시들해지더니 기타는 다른 취미에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결국 음악에 재능이 없음을 눈치를 채고나서 기타를 치고 싶던 욕망은 아주 멀어졌습니다. 

 

요즘 훌륭한 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겨봅니다.

훈련이 잘 된 연주가들이 모여서 오케스트라를 이루고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는 것.

이것이 제가 추구하고 꿈꾸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로 훈련하여 성과를 이루는 것.

운동에서는 동료들과 손발이 맞아서 창의적 플레이가 나오는 것이고, 

일에서도, 공부를 하는 모임에서도 이런 기쁨을 느끼는 것.

 

나의 재능은 무엇이며 어떻게 훈련하고 성장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문득 기타줄을 끊어 먹고 절망에 빠졌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줄을 감으면 목이 쉬이 들떠버려서 지판을 누르는 손가락의 아픔이 연습을 실증나게 한다는 핑계와

6번 줄을 팽팽하게 당기다보면 끊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을 눌러가며 겨우겨우 조이다가 끊어졌을 때의 낙담과

소질이 없음을 인정해야만 했을 때의 좌절과 

오히려 끈기 있게(기타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붙들고 늘어지지 못한 자괴감과

기타를 칠 줄 안다고 까불었던 부끄러움.

 

이런 감정들이 기타 뿐만 아니라 무엇을 대하건 딱 그만큼 있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할 줄 알고 무엇에 대해서는 안다고 할 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구분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낡은 기타의 끊어질 듯한 기타줄로 애써 음을 가늠하던 기억은 이제 내려놓습니다.

멀쩡한 기타의 기타줄은 절대로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이해가 옵니다.

낡은 기타의 기억은 놓아버리고,

새술은 새 부대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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