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팅고 이야기

자린고비 / 강연 <돌이켜 볼 때>

opener6 2022. 11. 22. 13:35

보통 우리는 지혜가 없습니다.

돌이켜볼 때를 제외하구요.

돌이켜볼 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한계로 보이는 것은 사실 도약대이자 도전이었습니다.

 

-2004 / 04 / 22라디오 강연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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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나눔이 뭔지 좀 알 것 같네!

<친구> 오! 정말 다행스런 일이군, 자네같은 자린고비는 또 없을꺼야.

<나> 내가 좀 인색하긴 하지?

<친구> 먹음직스런 굴비를 매달아 놓고 쳐다보지도 못하게 했지 아마도?

코라도 킁킁거릴까봐 냄새도 못 맡게 하고, 침이라도 고일라치면 난리를 치는 성미지 자네는.

<나> 내가 정말 그정도란 말인가? 이제 매달아 놓은 굴비를 내려야겠네. 

 

 

돌이켜보니 이십여년 전의 사건이 떠오릅니다.

2년 정도 어느 공동체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경운기를 몰고, 밭을 갈고, 퇴비를 하고, 논에 모를 심고,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어릴 때 자란 환경에서 보고 거들었던 일들이 아주 유용했습니다.  

오리도 키우고, 반려견도 입양하고 이름을 성실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웃 어르신들은 저를 놈팽이라고 반은 놀리시며 친근하게 불렀습니다.

 

해가 바뀌자 갑자기 동료들이 늘었습니다.

열명정도가 농사팀에 배정이 되었습니다.

농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냥 들떠 있는 모습에 눈꼴이 시렸지만 꾹 참았습니다.

일이 시작되자 소풍 가듯이 나섰던 사람들은 징징거리기 시작했고, 말없는 푸념의 환청까지 들리는 듯했습니다.

동료들의 마음은 농사에 목적을 두지 않아보였고, 인내의 시간은 느리고 답답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비탈이 심한 밭을 갈아서 배추인지 무우인지를 심기로 했습니다.

경운기가 뒤집어질 정도로 경사가 심해서 묘안을 내야만 했습니다.

궁리를 하자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남아도는 인력을 동원해서 쟁기를 끌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경운기로 밭을 갈아보긴 했지만 소를 몰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소를 부릴줄은 모르지만 사람들이 끄는 쟁기는 몰 자신이 있었습니다. 의견을 내었고, 별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던 동료들은 별 수 없이 수락을 했습니다.

 

마을에서 빌려온 쟁기에 수명의 동료들이 매달려서 쟁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이 나서 소 모는 소리를 해가며 밭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부리망을 채운 소처럼 동료들의 입은 무거워져갔고, 저녁이 되어서야 일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내심 속으로 고소함을 즐기는 면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알만한 장난꾸러기 같은 마음 말입니다.

 

저의 작은 장난은 결코 작지 않은 불평으로 돌아왔습니다.

소가 되었던 몇 명의 동료들은 기분이 상했음을 표정으로 소리 없이 드러내었습니다.

그 사건을 무마하느라 저는 동료들에게 얼마간 애를 써야만 했습니다. 

저 또한 동료들처럼 농사에 목적이 없었고, 그 해 가을에 그 곳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목적이 하나였다면 다른 일들이 펼쳐졌을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 시절 그 때에는 삶의 목적에 대해서 깊게 짚어 볼 만큼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깊이 잠들어 있는 목적에 움이 터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밭을 갈아 엎듯이 감정을 자극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음으로 여겼던 삶의 일화들은

땅 속 깊이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듯 각자의 삶의 목적을 깨우치는 작용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 얼마나 서툴고 힘에 부칠 것인지의 이해부족과

모르는 것에 대한 무력감을 회복하려고 이면의 감정을 불러오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까지의 부침과

스스로에게 부여된 힘을 믿기까지 바깥의 힘을 붙들고 의지혀려 애썼던 자아를 내려놓습니다.

 

자린고비처럼 굴었던 자신에 자애로운 용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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