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중후반에 마음에 혹한 제의가 들어왔다.
그러지 않아도 버거운 삶을 평생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웠던 터라 한 삼년 터전으로 삼던 일을 정리하고 무턱대고 어느 수행단체로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순진무구함의 극치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은 고되었지만
지긋지긋한 과거의 기억을 지워내고 새로운 나로 거듭난다는 일념으로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 삼년 하고나니 그곳에 더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다시금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지만
여전히 나는 과거의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전거로 미친듯이 이산 저산 헤매었다.
한 삼년 그렇게 하고나서 이생활도 아닌가 싶어
보기만 해도 흐뭇했던 자전거와 작별을 하고 또 어디론가 떠나야했다.
옛날이 그리워 다시 수행단체에 의탁해보려 기대었지만 이미 극이 달랐다.
튕겨져 나와 여기 저기 기웃하던 찰나에 사랑하던 사람은 '오자히르'의 여인처럼 나를 떠났다.
삶을 받아들이던가 영성에 완전히 몰입하던가 둘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더이상의 어중간함으로는 떠난 사람을 붙들수도 없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었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영성쪽은 아니었나보다. 아직 세상의 미련이 더 컸다.
날조한 이력서로 스무번 가까운 면접으로 어느 사장님 에쿠스를 몰게 되었다.
일주일만에 해고를 당하고 스무번 가까운 면접 끝에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그렇게 한 삼년 또다른 일자리에 심취하다보니 한계에 다다랐다.
또다른 것을 찾을 시점이 된 것이다.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왔고 그의 권유로 집짓는 일도 몇달간 배웠으나 경험으로 그쳤다.
국밥집 주방에서 두어달 일도 해보았다.
계속하여 삶은 나를 옥죄어왔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음의 평화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답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았고
더 이상 사람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불필요함을 알았다.
다시 길을 떠났다.
나를 받아준 환경은 제주도였다.
이곳에서 하던 일을 2년의 과정끝에 행위자 없는 행위를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호박사님의 책을 다시 접한 것은 그 시점이었고, 헌신적? 삶을 살아보기로 작은 용기를 내었다.
올초에 어떤 인연으로 만난 세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adhd 증상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반가운 인였이었나...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그리고,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속에 점차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에
한발짝씩 다가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내가 그토록 찾았던 행복이 평화로움으로 이어지고 사랑이 무엇인지 서서히 알아지는 과정이다.
얼마전 아버님의 사고소식을 들었다.
경운기 벨트에 손가락을 다쳐서 입원을 하셨다.
느닷없는 소식에 이어 수술하려고 검사를 하는데 폐암이 의심된단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어머니 혼자 들어내기라 두렵다고 하셔서 먼 거리를 달려갔다.
그 날 저녁 어머니는 치료비 걱정, 빚 걱정, 오만가지 걱정을 다 쏟아내신다.
우리 어머니는 신사임당은 아니시다.
덤덤히 듣고 있자니 어머니 왈
"니 귀엔 귀신 장가는 소리로 들리지?"
"어!"
함께 잠시 웃다가 만다.
무슨 대화를 더 꺼내려다가 어머니가 먼저 잠드셨다.
다음날 병원에서 아버지는 유쾌하시다.
손가락만 붙이면 다시 뛰쳐나가실 계획이신가보다.
열두시쯤 검사 결과를 들은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지지 않으셨다.
혼자 남아야 하는 두려움과 싸우시는데 아들이 힘이 되시나보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바라는 아무 것도 해드릴 수가 없다.
4남매가 있는 집으로 새엄마로 들어와 평생을 고생만 하신
엄마에게 따뜻한 위로를 해드릴 수 없었다.
덤덤히 자신의 한을 쏟아내는 것을 들어드리는 것 밖에는.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어릴때 아버지께 배운 기술로
대나무로 비닐하우스를 지었다는 소식 밖에는.
문짝도 근사하게 달았다는 말씀 밖에는.
가난에 허덕였던 환경 속에서였지만
집 뒤안의 쩍쩍 갈라져 속살이 보이던 복숭아 맛이 그립다는 말씀 밖에는.
토탈 6남매의 형제들에게도 세상이 바라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사랑을 깨달아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해줄게 없음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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