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와 타샤할매 -
나는 이상하게도 커피를 즐기지 않았다.
어쩌다가 먹을 기회가 생기면 그저 받아 먹을 뿐이었다.
스스로 커피를 찾아 먹지 않았다.
하물며 밥값과 맞먹는 커피를 사먹는 것은 뭔가 씀씀이의 오류를 범하는 것 같았다.
술자리에서 대화하는 문화 밖에는 나오지 못해서였으리라.
한 오년전 커피숍을 드나들기 시작하는 시점이 있었다.
커피 이름과 입맛의 선택지를 매칭시키지도 못한채 4지 선단 문제를 찍는 것처럼 주문을 했다.
모카를 시켰다가 '이건 왜 이리 달지?' 했으며
라떼를 시켜놓고도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녹차가루 조금 넣고 1000원을 더 받는다고 흥분했다.
에스프레소의 쓴맛은 별일이었다.
제법 진지한 수다를 떨기 위해서 시작한 커피는 차츰 익숙해져갔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맛을 모른채였다.
제작년에 중문에서 일할때 신라호텔 커피숍을 꽤 드나들었다.
그곳에 가면 미모의 아가씨들이 서빙을 하는데 그것이 맘에 들었다.
상냥하면서 친절한 태도는 내가 꼭 몸에 익혀야 할 부분이었기에 그랬다.
그곳의 의식의 장도 나의 지끈한 머리를 식혀주었고,
누림의 문화도 접하는게 좋닸다.
그러나 커피값은 오지게 비쌌다.
오지게 비싼 커피를 맛도 잘 모르고 케냐니, 콜롬비아니 주문을 했다.
진득한 수다도 없이 혼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메이트가 제주도로 내려온 후 가끔 산책길을 나서면서 라떼 한잔을 테이카웃했다.
쌀쌀한 날씨에 뜨끈 뜨끈한 맛으로 후룩후룩 나눠 마셨다.
그러다 문득 나는 미각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메이트가 차려준 음식에 맛이 있다, 없다만 있을 뿐이지 어떻게 맛을 냈는지 나는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메이트가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계속 궁색한 답변만 일관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가 요리를 해서 내놓는 편이 맘이 편했다.
그무렵 나는 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위자 없는 행위의 설걷이를 시작했다.
대충 떼우던 습관의 식사에서 탈피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밥상에서 미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느날 메이트가 커피머신을 사자고했다.
웅쥔에서 판매하는 드뢍기인데 활리스 커피를 2년 약정으로 하면 30만원 깎아준단다.
응근한 조름에 뚱하던 마음은 무너졌고 배달된 기계로 씨름을 하였다.
커피를 둬봉다리째 내리자 맛이 나왔다.
하지만 주문했던 2년 약정 커피도 옳찮았고,
온사방 알아본바로 유럽에서 단종된 기종을 뻥튀겨 팔아내는 걸 알았다.
14일 이전에 반품을 받아준대서 12일 쓰고 반품을 했다.
그리고 훨씬 신기종에 값도 싼 제품을 파는 곳을 알게되었다.
새 제품이 오는 사이 커피가 생각나서 앞집 아저씨에게 핸드드립도 배웠다.
그렇게 홀짝홀짝 마시던 커피가 어느날 나를 찾기 시작했고 내가 커피를 찾는다.
이제야 커피 맛이 들어오고 점차 미각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분주히 쫒아다니지 않고 쫒기지 않는 삶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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