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라수목원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달리고 싶어졌습니다.
그곳은 체육특기학교에서 겨울 전지훈련을 하는 장소로 인기가 있는 곳입니다.
건강하게 달리는 학생들을 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학생 소리를 들었던 저로서는 함께 뛰고 싶은 피가 끓곤 합니다.
며칠전에 새로 산 아식스 운동화(처음 신어본 브랜드)를 신고 마음은 포레스트 검프가 나이키를 신은 것처럼 뛰었습니다.
아내와 동행했던 한 아이를 두고 펄쩍 펄쩍 노루처럼 뛰어 나갔습니다.
한 1000미터 쯤 뛰고나니 숨이 가빠왔습니다.
숨이 한꺼번에 빨려 들어오지 못하고 느리게 공급되었고 기침이 났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이 병은 3년전 수영을 배울때 처음 겪었습니다.
잠영으로 25m를 숨을 참고 가는 연습을 할 때, 밤에 자다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적이 한참 있었음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마음적으로는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몹시 괴로워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떠오르는 감정을 삭이지 못해 발작처럼 온몸에 두드러기가 오르는가 하면
어릴때 앓았던 이염이 다시 도져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마흔 넘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의 목수 일을 배우면서 내적 갈등과 더불어 외적요인으로 얻은 비염과 기침 가래 천식으로 새벽 3시쯤에서 5시까지는 숨을 쌕쌕 몰아쉬며 가래를 뱉어내기도 했습니다.
목수 일을 하면서 마신 먼지에 탓을 돌리는 저에게 아내는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지 않냐고 하면 속으로
'그럼 탄광의 노동자들 진폐증도 마음의 병입니까?' 라고 받아쳤습니다.
싸운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기에...
셋이 식당에 앉아서 주문을 하는데 여전히 숨소리가 쌕쌕 거립니다.
이 상태로는 밥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어떨지 모를게 뻔했기에 어떤 수를 내야만 했습니다.
뭐지? '이 뭐꼬?'를 해봤습니다.
내가 달리기를 잘은 못해서 1등 해보려고 1000미터를 뛰다가 2등하고 30분을 구역질 했던 경험과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 꼭대기까지 안쉬고 올라가서 저혈당으로 1시간을 뒹굴었던 기억은 있어도
이런식으로 숨이 찼던 기억은 절대 아니란 말이지. (은근히 끼어드는 경함담의 자랑질)
그러면 이거슨 무엇인가?
질문을 작성하고 답을 해보았습니다.
이 병은 정녕 목수 일을 해서 해로운 먼지로 얻은 병입니까? (글쎄요 아마도 아닐껄요...!)
그럼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에서 생긴 저의 조화롭지 못한 성격 탓입니까? (쩝! 뭐라고 해야할지 위로를 해야하나...?)
음, 그럼...
제가 아직 이해하고 있지 못한 영역입니까? (요건 질문이 좀 색다르군요.)
음, 그럼...그럼...
제가 이병을 앓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
혹시 이 병을 앓는 것이 다른 이들의 질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요? (...)
불편하게 들락이던 숨이 서서히 풀리면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에게 머물렀던 몸과 마음의 병들이 불현듯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아픔을 별것 아니듯 대했으므로 남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불찰들이 떠올랐습니다.
못고칠 지병은 병을 만든 사람을 탓했으며, 제 생각에 그 정도면 안고 갈 수 있는 병을 드러내는 것에는 못본척이었습니다.
10만원씩이나 내는 건강 보험료는 무척이나 아까웠으며 저의 다리도 못고치는 병원은 믿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몰이해의 마음에서 표현된 불친절한 행위들이 투사된 세상에서 내가 어찌 편하게 지내길 바랬던가!
친절하라는 호박사님의 한마디에 함축된 의미는 그동안 제가 알고 있었던게 아니었습니다.
삶속 모든 행위에 속속들이 배인 친절 그것은 아무나 구할 수 없는, 천국으로 가는 차표를 살 수 있는 노자를 버는 길이였습니다.
그 순간 숨도 풀리고, 코도 뚫리고, 귀도 열리고, 다리도 멀쩡하고.
아내가 주문한 스테이크는 어찌나 맛나던지요.
지금 혹시 병을 앓고 계시다면 당신의 성령께서 노크하는 어떤 신호임에 틀림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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