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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술은 새부대에

고등학교 때 기타를 멋지게 쳐서 인기를 받고 싶은 욕망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막걸리를 먹으며 부르던 노래들은 트로트 메들리였습니다. 욕망이 뿌리내릴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고물 기타가 생겼는데 다음 순서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욕망은 금새 말라 죽었습니다. 배울 선생님도 없었을 뿐더러 제대로된 조율법도 모른채 줄을 당기다가 끊어지면 바로 절망이 왔습니다. 기타 줄 뿐만 아니라 전반적 삶에 스페어란게 없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20대 초반 어느날 기타에 절망했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당장 낙원상가에 달려가서 기타를 샀습니다. 튜닝 기능이 내장된 고급스러운 기타로 질렀고, 끊어먹지 않으려고 기타줄도 비싼걸로 두벌을 구입했습니다. 학원도 끊었습니다. 처음엔 열심히 연습하다가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가고 ..

문자

어떤 느낌이나 상태를 말이나 문자로 상대에게 전달을 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단어나 문장에 대해서 각자의 체험이 다릅니다. 어쩌면 어떤 단어를 익히면 자신도 모르게 기성복 차림처럼 공통적으로 쓰인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는 수천 수만 종인데 그저 나무라고 이름 붙인 것처럼 슬픔 또는 외로움을 나무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가에 사는 버드나무와 한라산 중턱의 금강송은 엄연히 다르지만 둘 다 나무임은 확실합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익힌 사람의 환경이 버드나무와 금강송처럼 다르다면 오해가 뒤따르고 이것으로부터 서로의 감정적 충돌이 생기는 듯 합니다. 다른 예로 남성과 여성의 태생적으로 좌우되는 성격적 차이에서도 무시못할 오해가 쌓여서 서로 다름에 끌리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렴의 계절로 접어들며 책과 음악의 시선을 빌어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저항감을 내려 놓으니 책들이 읽어지기 시작하고 음악도 들어지고 이웃 사람들에게 투사했던 감정들도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책은 어느 뇌과학자가 실제로 뇌출혈이 일어나서 쓰러지고 회복한 생생한 체험담을 담은 책입니다. 질 볼트 테일러라는 명랑한 성격의 뇌과학자는 오빠가 뇌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뇌과학자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37세의 어느날 아침 좌뇌에 뇌출혈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좌뇌 기능이 떨어지면서 세상과의 분리감이 줄어들고 일체가 되는 체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호박사님의 저서 '나의 눈'에 나오는 깊은 체험을 일반인(뇌전문가이긴 하지만)이 뇌출혈로 겪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진지한 가운데 ..